풍요의 시대, 왜 비즈니스는 더 느려지는가?

어떤 개발자가 오픈채팅에 글을 올렸다.
이전에 읽었을때보다 최근 더 크게 와닿는 영록님의 글 이라며 [LINK] 올렸다.
나는 실제 그 분을 알지는 못했지만 개발자들 방에서 이구동성으로 공감하는 글이며, 필력이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며 내용도 명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조직 관리, AI 시대의 본질, 경영 전략이라는 3가지 관점으로 정리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AI의 발전으로 코딩 속도가 폭증하고, 데이터 분석 보고서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시대이다.
많은 경영자와 리더들은 이러한 기술적 풍요가 곧 비즈니스의 초고속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비즈니스의 속도가 처지는 현상이 종종 관찰된다.

원문의 주인공(박영록님)은 과거 커머스 기업들이 자체 쇼핑몰 구축을 위해 유행처럼 100명의 개발자를 채용할 때, 그는 단 10여 명의 정예 인원만으로 미션을 완수했다. 반면 10배나 많은 개발자를 투입했던 경쟁사들은 2년, 심지어 4년이 지나도록 프로젝트를 끝내지 못하거나 중도 포기했다는 경험담을 예시로 들었다.

이 충격적인 격차는 AI 시대인 지금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팩트는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1. 3가지 관점으로 바라본 비즈니스 인사이트

ㄱ. AI 시대 조직 관리와 제약 조건의 축복

많은 리더들이 조직의 인력이 부족하거나 예산이 한정되어 있을 때 이를 단점으로만 인식한다.
개발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오히려 핵심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긍정적인 제약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자원이 부족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작업만을 골라내어 실행하게 됨의 원리이다.
반대로 자원이 지나치게 풍부해지거나, AI로 인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비용이 극도로 낮아지면 조직은 심각한 질병에 걸리기 쉽다. 이를 IT 업계에서는 ‘Feature Creep(기능 기어오르기)’ 현상이라 부른다.

Feature Creep (기능 기어오르기)
: 프로젝트 리더나 비즈니스 부서의 욕심으로 인해, 제품의 본질과 상관없는 자잘하고 불필요한 기능들이 끊임없이 추가되면서 프로젝트가 비대해지고 결국 본질을 잃어버리는 현상.

개발자가 넉넉하거나 AI 툴이 주어지면, 사내의 온갖 부서에서 나오는 자잘한 요구사항에 모두 대응하기 시작한다.

“자원도 많은데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넣으면 좋겠다”라는 목소리에 리더가 저항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고객이 원하지도 않고 비즈니스 구조상 필요도 없는 기능들이 덕지덕지 붙으면서 시스템의 복잡도만 무한히 상승한다. 여러 기능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난이도는 올라가고, 코드 품질 관리는 실패하며, 정작 가장 완벽하게 돌아가야 할 핵심 기능은 어설프게 작동하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중요한 일을 잘 해내는 방법은 조직원들에게 “중요한 일에 집중하라”고 백 날 독려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단 1초도 쓰지 못하도록 리더가 칼같이 잘라내는 것이다. 이것이 작동하는 조직은 애초에 비대한 인력이 필요치 않다.

ㄴ. 기술 과잉 속에서 발견한 AI 시대의 본질

많은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도입하면서 ‘업무 생산성 향상’을 외친다.
개발자가 코드를 짜는 속도가 3배 빨라졌고, 마케터가 카피를 뽑아내는 속도가 5배 빨라졌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박영록 님은 이를 두고 냉정하게 ‘부분 최적화(Local Optimization)’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한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대부분의 IT 기반 기업들이 비즈니스에 실패한 이유는 ‘코딩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코딩은 비즈니스 전체 밸류 체인(Value Chain)에서 결코 가장 약한 고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고객에 대한 이해 부족, 엉망인 비즈니스 모델, 시장 흐름을 읽지 못하는 기획력에 있었다. 약한 고리가 아닌 곳의 생산성을 아무리 높여봐야, 비즈니스 전체의 가치는 단 1%도 상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시장의 FOMO(소외 불안 증후군)에 빠져 AI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AI가 온갖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신기한 결과물을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매출이나 순이익의 폭증으로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의 본질과 고객을 깊이 이해하고 올바른 가치를 전달하려는 태도이다.
이 본질적인 핵심을 관통하는 영역에는 엄청난 수준의 AI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도구를 다루는 기술에 매몰되기 전에, 우리가 지금 ‘쓰레기를 더 빠른 속도로 대량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함의 이유이다.

ㄷ. 경영 전략의 핵심과 전체 최적화의 법칙

데이터 엔지니어링 및 경영 전략 관점에서도 이 논리는 정확히 일치한다.
최근 대형 언어 모델(LLM)의 등장으로 데이터 분석 보고서의 양이 회사 내부에서 폭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질문 몇 번이면 그럴싸한 그래프와 리포트가 뚝딱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데이터 민주화’라는 키워드가 유행할 때도 경영 전략이 사방으로 파편화되면서 전사 성과가 갉아먹히는 부작용이 많았는데, AI가 이 부작용을 한층 더 가속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무리 복잡한 글로벌 기업이라 할지라도, 경영진과 전 직원이 매일 목숨 걸고 확인해야 할 핵심 지표(North Star Metric)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가치 없는 수백 장의 분석 보고서를 양산하는 것보다, 단 하나의 올바른 핵심 지표를 설정하고 전 조직을 그 방향으로 완벽하게 정렬(Align)시키는 능력이 진정한 경영자의 역량이다.

테크 기업의 경영자라면 엘리야후 골드랫의 명저 《The Goal(더 골)》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제약 이론(TOC)을 다룬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체적인 관점과 조율이 없는 상태에서 각 부서가 제각각 생산성을 높이는 행위(부분 최적화)는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 재고를 만들고 흐름을 막아 회사를 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경영자는 AI를 기술 그 자체의 동력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이미 시장에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고 수익을 내고 있는 우리 비즈니스의 엔진, 즉 ‘플라이휠(Flywheel)’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AI는 그 잘 굴러가고 있는 플라이휠을 조금 더 매끄럽게 가속해 주는 부가적인 윤활유나 수단으로 활용될 때 비로소 거대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단순 인건비 절감이나 유행 추종 방식으로 접근했다가는 잘 돌아가던 기존의 비즈니스 생태계마저 완전히 붕괴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 기술의 속도를 이기는 본질의 힘

수많은 기업의 상무님들과 C-Level 경영진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이유는, 기술 과잉의 시대에 우리가 망각하고 있었던 ‘경영의 본질’을 정면으로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AI 시대는 역설적으로 기술의 중요성보다 이를 통제하고 방향을 잡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극대화한다.
코딩을 얼마나 더 많이 하고, 보고서를 얼마나 더 많이 찍어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 우리 고객에게 진짜 가치를 주는지 찾아내고, 그 외의 쓰레기 같은 업무들은 조직에서 완벽하게 거둬내는 절제의 전략이 필요하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스티어링 휠(운전대)을 잡은 사람의 손귀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AI라는 초강력 엔진을 얻은 경영자들일수록, 속도감에 도취되기보다 우리가 지금 올바른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지 나침반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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